902 八幡製鉄所 / Yawata Imperial Steel Works / 八幡制铁所 / 八幡製鐵所 / 야하타 제철소
Guide No. | 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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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20年代に入ると鉄道の敷設が進行し、工業の発展も重なって、鉄鋼の需要が急増しましたが、ほぼ輸入に頼っていました。そこで製鐵所の建設案が浮上し、建設地が八幡に決定して、明治34(1901)年に操業を開始しました。近代製鉄では高炉に鉄鉱石を入れ、コークス(石炭を蒸し焼きにしたもの)を還元剤として用いて不純物を取り除いて鉄を取り出します。そのため製鉄には大量の石炭が必要です。遠賀川流域の豊前国と筑前国にまたがる「筑豊」地域は日本有数の炭田地帯です。このような豊富な石炭資源があり、地元の村長や筑豊の炭鉱家など関係者の積極的な運動が加わって、八幡に官営製鐵所が建設されたのです。操業開始後2度高炉の停止に追い込まれましたが、設備の改良を重ね、問題を克服して、ようやく安定した生産を実現しました。 官営製鐵所の旧本事務所などは世界文化遺産「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に登録されています。 | |
More railways were built from 1887 onward, coinciding with industrial development. Demand for iron and steel increased rapidly, but these necessary materials were mainly acquired by importing from abroad. Then, a plan for building an iron and steel works facility in Japan was proposed, and that facility began operations in 1901. In modern iron and steel works, iron is produced by putting iron ore into a blast furnace, using coke (a material made from steaming and heating coal) as a reducing agent, and removing impurities. Large volumes of coal are required for producing iron through this method. The Chikuho area cutting across the former Buzen Province and Chikuzen Province near the Onga River was one of Japan’s most prolific coalfield regions in those days. With these rich coal reserves combined with the proactive efforts of relevant people such as the local village leaders and coal miners, Yawata Imperial Steel Works was built in Yahata. The blast furnace was forced to stop twice after beginning operations, but the facilities were repeatedly upgraded to overcome these problems, and stable production was successfully achieved. The old business office of The Governmental Iron & Steel Works and other similar facilities have been registered as world heritage sites as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 |
进入明治20年代后,不断铺设铁路,工业也不断发展,钢铁的需求急剧增加,但几乎都依靠进口。因此,制铁所的建设方案浮出水面,建设地确定为八幡,1901年开始投产。在近代炼铁过程中,将铁矿石放入高炉中,使用焦炭(将煤蒸烧而成)作为还原剂,去除杂质,提取铁。因此炼铁需要大量的煤炭。横跨远贺川流域的丰前国和筑前国的“筑丰”地区是日本屈指可数的煤田区。有这样丰富的煤炭资源,加上当地村长和筑丰煤矿等相关人员的积极运动,在八幡建设了官营制铁所。投产后两次被迫停止高炉,但不断改良设备,克服了问题,终于实现了稳定的生产。 官营制铁所的原本事务所等被列入世界文化遗产“明治日本的工业革命遗产”。 | |
進入明治20年代(1887~1896),開始進行鐵路的鋪設,於此同時工業也發展起來,對鋼鐵的需要激增。然而,這種需要卻基本只能依賴進口來滿足。這時,建設製鐵所的方案出現了。選址在八幡並1901年,製鐵所正式開工。近代煉鐵方法主要通過焦炭(煤炭高溫加熱後的產物)發揮還原劑的作用,將高爐內鐵礦石中的雜質去除,提取出純度較高的鐵。因此,煉鐵需要用到大量的煤炭。橫跨遠賀川流域的豐前國與築前國兩國的「築豐」地區是全日本首屈一指的煤田分佈地。坐擁如此豐富的煤炭資源,再加上當地村長及築豐地區煤礦企業等關係人的大力推動,官營製鐵所在八幡開業了。正式開工後,官營製鐵所曾兩度陷入高爐停止的窘境。但通過多次設備改良,製鐵所克服了各種問題,最終實現了穩定的生產。 官營製鐵所的舊總事務所等部分均被登錄在世界文化遺產「明治日本的工業革命遺產」目錄之中。 | |
18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철도 부설이 진행되고 그와 함께 공업이 발전하여 철강 수요가 급증했지만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철소의 건설안이 부상하고 건설지가 야하타로 결정되어 1901년에 조업을 시작했습니다. 근대 제철에서는 용광로에 철광석을 넣고 코크스(석탄을 찌고 구운 것)를 환원제로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철을 만듭니다. 따라서 제철에는 대량의 석탄이 필요합니다. 온가 강 유역의 부젠 국과 지쿠젠 국에 걸쳐 있는 '지쿠호' 지역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탄전 지대입니다. 이처럼 풍부한 석탄 자원에 지역의 촌장이나 지쿠호의 탄광가 등 관계자의 적극적인 운동이 더해져 야하타에 관영 제철소가 건설된 것입니다. 조업이 시작된 이후 용광로가 정지하는 일이 2번 있었지만, 설비 개량을 거듭하고 문제를 극복하여 마침내 안정된 생산을 실현했습니다. 관영 제철소 구 본사무소 등은 세계문화유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